감성 로봇 채피, 인간을 뛰어넘는 AI의 혁명
영화 <채피>는 로봇이 인간의 감정과 자아를 가지게 되었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윤리적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로봇 경찰 군단 '스카우트'의 일원이었던 채피는 자아와 감정을 가진 최초의 인공지능 로봇으로, 그의 존재는 인간과 로봇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듭니다.
로봇 경찰 군단 '스카우트'의 등장
멀지 않은 미래 2016년, 범죄자들이 판을 치는 도시 요하네스버그에는 인간을 대신하여 범죄와의 전쟁을 치를 로봇 경찰 군단이 등장합니다.
이름하여 ‘스카우트.’ 그들은 고통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고 부품을 교체하기만 하면 다시 새것처럼 살아 움직일 수 있는 로봇이기 때문에 인간을 대신해 위험에 앞장서고 범죄를 소탕합니다. 인간들은 그러한 스카우트를 믿고 의지하며 도시는 점점 평화로워집니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스카우트를 설계하고 개발한 디온(데브 파텔)은 회사 측으로부터 큰 영예와 신뢰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동시에 찾아오는 법.
사사건건 그의 성공이 못마땅한 동료 로봇 개발자 빈센트(휴 잭맨)의 질투심도 날로 강해집니다. 그의 삐뚤어진 마음은 훗날 영화에서 큰 사건을 일으키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스카우트와 채피의 창조주 '디온'
사실, 로봇 개발자인 디온에게는 스카우트의 성공이나 빈센트의 적개심 따위는 관심도 없습니다. 그는 매일 밤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만의 연구에 골몰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의식과 감정을 가진 인공지능 로봇을 만드는 것으로 결국 그 꿈을 이룹니다. 디온은 자신이 완성한 인공지능 기술을 테스트하기 위해 폐기된 스카우트 22호에 신기술을 설치하고 작동시킵니다. 그 로봇이 바로 채피입니다.
채피는 ‘꼬마’라는 뜻의 이름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상태로 깨어납니다. 마치 사람 아이가 커가는 것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흡수하며 언어, 지식, 감정을 배우고 느끼고 성장합니다.
심지어는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창의적인 활동을 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신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과 같은 심도 깊은 주제를 탐구하며 인간과 같이 사고하는 존재가 되어갑니다.
생각하는 로봇, 채피
이러한 채피의 모습에 주변 인간들은 혼란을 느끼고 채피를 인간처럼 대해야 할지 로봇으로 대해야 할지 큰 고민과 갈등을 느끼게 됩니다. 몸은 기계지만 채피는 분명 사람처럼 사고하고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기계로서 대하기에는 무언가 마음에 걸립니다.
사실 이러한 채피의 사고 프로세스들은 기본적으로 창조자 디온이 프로그래밍 한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디온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이 성장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이러한 채피의 성장은 기존의 로봇 영화들에서 완성된 형태로만 등장했던 다른 로봇들과는 큰 차이를 보이며 기술의 발전에 따라 로봇이 인간과 같이 진화하면서 과연 인간과 로봇의 경계를 어떻게 구분지을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집니다.
인공지능 기술, 딥러닝
그렇다면 실제로 그러한 기술이 현재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면 채피와 같은 로봇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채피가 처음 눈을 떴을 때 사람의 얼굴을 이미지 정보로 처리하고 '엄마'와 '아빠'라는 단어와 연결짓습니다.
또한 다양한 사물의 이름을 학습할 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딥러닝이라는 인공지능 기술을 떠올리게 합니다.
딥러닝은 인공지능 분야 중 하나인 머신러닝 분야에서 주목받는 기술입니다. 딥러닝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 비선형 변환기법의 조합을 통해 높은 수준의 추상화(abstractions, 다량의 데이터나 복잡한 자료들 속에서 핵심적인 내용 또는 기능을 요약하는 작업)를 시도하는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알고리즘의 집합을 뜻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많은 데이터 속에서 이를 분류하고 군집화시키는 기계학습 방법으로 컴퓨터가 마치 사람처럼 생각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딥러닝의 응용과 실제 사례
예를 들면 컴퓨터는 강아지를 스스로 구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아주 쉽게 구별 할 수 있습니다. 딥러닝의 핵심은 수많은 데이터에서 패턴을 발견해 인간이 사물을 구분하듯 컴퓨터가 데이터를 구분하고 예측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분별 방식에는 ‘지도 학습(supervised learning)’과 ‘비지도 학습(unsupervised learning)’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지도 학습 방식은 컴퓨터에게 미리 “이 사진은 강아지”라고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식입니다. 비지도 학습은 그러한 과정없이 “이 사진이 강아지겠군”이라고 컴퓨터가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비지도 학습 방식은 지도 학습과 비교했을 때 훨씬 진보한 기술이며, 높은 연산 능력이 요구됩니다. 영화에서 채피는 초반에는 자신의 창조자 디온이나 마미, 대디와 같은 주변 사람들의 지도 학습을 통해 사물을 구분하고 후반에는 비지도 학습 방식을 통해 자율적으로 지식을 습득해갑니다.
2012년 스탠포드 대학의 Andrew Ng과 Google이 함께한 딥 러닝 프로젝트에서 16,000 개의 컴퓨터 프로세스와 10억 개 이상의 neural networks, DNN(deep neural networks)을 이용하여 유튜브에 업로드 된 천만 개 이상의 비디오 중 고양이 인식에 성공하여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Microsoft, Facebook 등도 연구팀을 인수하거나 자체 개발팀을 운영하며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수집한 데이터를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표현(representation)을 할 수 있는지 이를 어떠한 학습에 적용할 수 있는지가 주요 핵심 연구 사항들이며,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다양한 딥 러닝 기법들이 컴퓨터 비전, 음성인식, 자연어처리, 음성/신호처리 등의 분야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기계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기술의 발전으로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아지거나 혹은 그 이상 뛰어넘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현실화 되어 가고 있음을 우려하는 의견이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로봇을 주제로 한 영화들은 로봇이 인간을 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전반적으로 깔려있습니다. 영화 ‘채피’도 로봇이 인간처럼 인지 발달이 이루어지고 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을 때 벌어지는 혼란과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독보적으로 지니고 있는 인지 발달 능력을 갖고 있는 채피는 로봇일까요? 인간일까요?
퀸ㆍ메리 대학의 스링그 교수는 로봇은 인간에게 프로그래밍 되어 애초부터 결정된 방법으로 자신의 운동을 조절하고 움직일 수 있는 기계라고 정의했습니다. 채피는 프로그래밍 된 부분 이외에도 딥러닝과 같이 학습을 통해 성장을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 정의에 맞는 로봇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또 다른 하나,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 될 수 있는 부분 중 하나는 발달 시기입니다. 동물들은 출산 전에 뇌가 거의 완성되는 반면, 인간의 뇌는 출산 후에도 계속 발달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인간 아이들은 세상 밖의 복잡한 자극들을 경험하게 됨에 따라 다른 동물에 비하여 환경에 더 잘 적응할 수 있게 뇌가 진화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인 조건인 뇌의 발달은 상호관계를 통한 진화적 변화를 의미하며 딥러닝의 이론들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딥러닝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이제는 인지 발달 능력이 인간만의 고유한 조건이라고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결말에 다다르면 채피는 자신을 창조한 디온이 죽음의 위험에 처하자 그의 뇌 데이터를 백업한 후 로봇 스카우트의 몸에 이식합니다. 육체는 기계이지만 정신은 완전히 디온인 것입니다.
육체가 필요할 때마다 다른 기계에 뇌 데이터를 옮기면 됩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은 코웃음 칠 만한 내용이지만 추후에 기술이 더욱 발전하게 된다면 가능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는 인간일까요 로봇일까요?
최근 로봇 기술과 뇌신경 연구를 융합하여 몸에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의 불편한 육체를 대신해주는 형태의 많은 연구가 의료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인간의 뇌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로봇이라면? 기계가 신체를 대체하기 시작해서 어느 정도 비율에 다다랐을 때 그가 인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89%? 90%?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요? 로봇의 정의는 갈수록 더 난해질 거라고 여겨집니다. 채피와 같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고 감수성이 뛰어난 로봇이 출현하면 로봇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끝으로
우리는 채피와 같이 감정을 가진 로봇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많은 혼란이 있겠지만 결국 답은 사람이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로봇이 우리의 삶에 깊숙이 들어오기 전에 인간의 존재와 본질에 대해서 잘 살펴보고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흐려졌을 때,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흥미롭겠습니다.